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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마당/군농민회

고창군농민회 영농발대식 무사히 마쳐..


3월 18일 고창읍 동리국악당 진입로와 국악당에서 '2009 고창농민 영농발대식'이 열렸다.
이튿날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에 더해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듯한 스산한 분위기.
무엇보다도 내일 비가 온다는 예보는 날을 받아도 가장 최악의 날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회장님을 비롯한 집행간부들의 걱정에 땅이 꺼진다.
어찌되었건 오전 9시가 넘자 면 지회별로 행사물품을 챙겨들고 텐트를 설치하고 지역농민들 접대할 탁자를 까느라 행사장에 활기가 돌기 시작한다.
군농민회 집행간부들 역시 각자 맡은 일들을 차질없이 해나간다.
어려움 속에서도 묵묵히 할 일은 하는 동지들이 있기에 가는 길 험난하다 할지라도 우리는 행복하다.

행사장 설치가 마무리되고 11시가 넘어서자 서서히 지역에서 농민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각 면에서 설치한 천막에서 음식을 나누어먹으며 술 한잔씩 주고받는 가운데 분위기가 무르익어간다.
군농민회에서 준비한 '통일쌀 떡메치기' '풍년농사 생산비보장 부적찍기' 등 부대행사도 비교적 순탄하게 성황리에 진행된다.

정오를 넘어 1시가 가까워진다. 이제 바깥 음식판을 정리하고 실내행사로 전환해야 하는데 쉽지 않겠다. 
각 천막마다 지역농민들과 손님들이 들어차 있고 비로소 주흥이 최고조에 달해 있다. 
그러나 뒤이을 행사를 위해 풍물패를 투입해야 할 시간이다.
풍물패가 천막을 한바퀴 휘돌아 동리국악당 마당으로 돌아나온다.
각본대로라면 풍물패와 함께 천막에 있던 사람들이 국악당 마당으로 함께 어우러져 나와야 한다.
그런데 고스란히 풍물패만 되돌아나오고 만다.
아뿔싸! 문제가 있다 싶었으나 하는 수 없다. 계획대로 진행하는 수밖에..
어정쩡한 분위기에서 박이 터지고 '이명박 정권 심판하자'는 구호와 '농협개혁 완수하자'는 구호가 박 속에서 쏟아져나온다.
 

군중이 환호할 틈도 없이, 환호할 만한 군중도 채 모이지 못한 가운데 다소 썰렁하게 박이 터지고 말았다.
뒤이어 외세의 간섭과 지배를 척결하고 민족농업을 사수할 것을 결의하는 고천문이 낭독되고 고사가 진행된다. 
이것으로 바깥행사는 끝이다.

이제 동리국악당 안. 1시 30분이 되었다.
밖에 모였던 사람의 1/3 정도만이 국악당 안으로 들어왔다.
나머지는 밖에서 술 한잔씩 하고 있거나 다시 논과 밭으로 돌아가버린 상황.
그래도 기념식은 진행된다.
군농민회장의 대회사, 도연맹 의장의 격려사, 고창군수의 축사, 한농연 회장의 연대사 등이 이어지고 청보리사랑의 노래공연이 나름 속도감 있게 진행된다.



기념식이 끝나고 마지막 순서로 영화 '워낭소리'가 상영된다.
관객은 주로 나이 많으신 어르신들,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국악당 안에는 관객들 두런거리는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한평생을 농사일로 살아오신 분들이기에 영화 속 이야기가 곧 내 이야기이다.
그렇기에 하실 말씀들이 많으신 모양이다.
상영조건이 좋지 않아 자막은 잘 안보이고 대사도 잘 안들리는데 젊은 사람들보다 훨씬 쉽게 영화 속으로 들어가시는 듯 하다. 소가 죽을 때쯤 되자 할매들은 숫제 나갔다가 들어와서 소 죽었지야고 묻는다.
차마 소 죽는 모습을 볼 수 없어 나갔다 오신단다.
워낭소리 상영을 마지막으로 2009년 영농발대식이 무사히 막을 내렸다.

한해 농사를 시작하며 풍년농사를 기약하고 각종 농업 농민문제에 대한 투쟁결의를 다지는 의미로 열리는 영농발대식은 특별한 농한기가 사라져버린 현실에서 매번 어렵게 치뤄져오고 있다.
해가 거듭될수록 영농발대식의 의미도 많이 퇴색하고 연례행사로 굳어져 행사를 치뤘다는 그 자체가 의미가 되어버린 감도 없지않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농발대식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은 그 어떤 곤란에도 우리는 영농과 투쟁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고, 내년에는 더 잘할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영농발대식에 대한 차분한 평가와 반성으로 고창군농민회 대중활동을 혁신하여 대중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올 한해 사업과 투쟁 힘있게 벌여나가야 할 것이다.